그녀는 마흔 해 동안, 자신의 이름으로 된 통장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.
우리 상담실에 처음 앉던 날, 그녀는 오래 말이 없다가 이렇게 물었다. "제 몫이라는 게, 있기는 한가요." 스물둘에 시집와 예순이 되도록 농사와 살림, 시부모의 오랜 병간호와 세 아이의 교육까지 집안의 모든 일이 그녀의 손을 거쳤지만, 집도 땅도 어떤 서류에도 그녀의 이름은 없었다.
참는 것이 미덕이라 배운 세대였다. 수십 년 동안 그녀의 말은 밥상 위에서 자주 끊겼고, 그녀의 자리는 언제나 맨 나중이었다. 막내까지 제 가정을 꾸려 떠난 해의 어느 저녁, 그녀는 조용해진 거실 소파에 혼자 앉아 앞으로의 삶을 생각해보았다고 했다.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. 그런데 그 시간을 살아갈 자신에게, 제 이름으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. 그날 밤 그녀가 두려워한 것은 혼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, 빈손이 되는 것이었다.
상대방의 주장은 예상대로였다. 땅은 물려받은 재산이니 나눌 수 없고(특유재산 항변), 연금은 애초에 분할 대상이 아니며, 집에만 있던 사람에게 기여할 것이 없다는 것.
우리는 그녀의 40년을 증거로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다. 첫 상담에서 서류 대신 그녀의 하루하루를 물었고, 그 대답을 수십 년 치 가계부와 남편 명의 통장의 입출금 기록, 병원 기록과 마을 조합의 장부로 하나씩 뒷받침했다. 그녀의 이름으로 된 통장은 없었지만, 그녀의 손을 거치지 않은 지출은 없었다. 물려받은 땅이라도 수십 년을 함께 지키고 일군 재산이라는 법리로 특유재산 항변에 반박했고, 혼인 중 가입기간을 확인해 연금 분할을 함께 청구했다. 재산이 처분될 조짐이 보이자 보전처분으로 먼저 묶어두었다.
법원은 우리의 주장을 받아들였다. 판결로 인정된 그녀의 몫은 토지를 포함한 재산과 연금의 절반.
재산분할로 토지 및 연금의 50%였다.
판결이 확정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, 그녀는 은행 창구에 앉아 생애 첫 통장을 만들었다. 직원이 물었다. "통장 이름은 어떻게 해드릴까요?"
그녀는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또박또박 불러주었다. 예순이 되던 해였다. 그녀의 다음 장은, 그 통장의 첫 페이지에서 시작된다.
